[더페어 프리즘] 건강보험공단 탁상행정 논란 "환자 오물 닦으면 법 위반"

건강보험공단, A 요양시설에 장기요양급여 부정수급 통지 "요양사가 환자 오물 닦은 것도 현행 규정 위반" 행정소송

2023-11-08     이용훈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사옥 전경 / 사진=더페어 DB

[더페어] 이용훈 기자=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최근 A 노인요양시설에 대해 '장기요양급여 부정 수급'을 이유로 업무정지와 함께 지원금 20여억 원에 대한 환수 예비 통지를 내렸다. A 요양시설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예고했다.

장기요양급여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6개월 이상 혼자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노인 등에게 간병 등의 서비스나 현금 등을 지급하는 제도다. 공단은 이 중 요양기관 장기 입소자에게 신체활동 지원 및 심신기능의 유지·향상을 위해 제공하는 시설급여가 해당 시설에 부당하게 지원됐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은 시설 위생과 인력 효율화를 위해 30인 이상 요양원에 대해 세탁업무 전량을 위탁 업체에 맡기거나 세탁 업무만 수행하는 위생원을 따로 고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0인 이상 요양시설은 1명의 위생원을 상시 근무하게 하고, 100명을 초과할 때마다 1명을 추가 고용해야 한다. 위생원을 고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전문 업체에 세탁 업무를 전량 위탁해야 한다.

세탁 업무를 위생사나 위탁을 맡은 업체가 아닌 요양사 등이 할 경우 앞서 말한 시설급여 지급 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구청 등 요양원 소재 자치단체가 이를 단속한다. 공단은 A 시설이 이를 위반했다고 본 것. 위생과 관련된 업무에 인건비를 부당하게 아끼고 혈세로 지급되는 장기요양급여의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취지라고는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요양사 업무 일러스트 / 사진=더페어 DB

노인요양시설 입소자들의 많은 수는 거동이 불편해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기 힘든 환자들이다. 규정대로 하면, 요양사가 이들의 오물을 치우거나 닦아내는 과정에 사용한 수건, 환자복 등을 위생원이 세탁하거나 위탁업체가 수거해 갈 때까지 오염된 채로 방치해야 한다. 과연 이것이 입소자와 시설 종사자들의 위생상 적절하냐는 것이다. 

행정소송을 제기한 A 시설 측도 이 부분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규정에 따라 세탁물 위탁업체 선정은 물론, 위생원 인력을 상시 배치 하는 등 내부 인력을 법정 기준 대비 30% 이상 추가 고용해 위생과 서비스 질을 높이고 있다"며, "요양사가 자신이 돌보는 환자의 수건이나 옷을 애벌빨래 한 것 등을 문제 삼는 건 법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공단의 행정 조치가 실제 현장에서 '위생과 관련된 업무에 인건비를 부당하게 아끼는 걸 막겠다'는 규정의 취지와는 정반대 결과를 낳은 상황이다. 더욱이 지원금 환수 외에 업무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입소자들은 시설을 옮겨야 하는 등의 불편을 겪어야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 이사장 / 사진출처=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

국민건강보험공단에도 사실 확인 및 입장을 물었지만 "해당 건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공단의 이번 지원금 환수 통지가 적절했는지 여부는 결국 재판에서 가려지게 됐다. '혈세'라고도 하는 귀중한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고, 바로잡는 건 정부기관의 역할이다. 하지만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적용되고 있는 제도나 규정을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는 것 역시 규정 집행에 선행해야 할 정부기관의 의무이기도 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놓친 것이 이 부분은 아닌지, 이번 조치가 또 하나의 탁상행정 사례로 남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