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페어] 이용훈 기자=포스코가 비상식적인 내부 통제로 물의를 빚고 있다. 무기명 설문조사를 하면서 특정 답안을 유도하는 공지를 하거나, 관리자가 보는 앞에서 조사에 참여하게 했다. 또 노조가 발송한 뉴스레터를 직원들이 수신할 수 없도록 사내 전자메일에서 차단한 사실 등이 내부 제보로 밝혀진 것이다.
포스코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일하기 좋은 회사(Great Work Place, GWP)' 설문조사를 외부업체에 의뢰해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이 결과를 자사 홍보수단으로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높은 GWP 지수가 나오도록 설문에 참여하는 직원들에게 답안을 유도하고, 설문조사 과정을 감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사실 확인을 위해 포스코에 해당 내용을 문의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GWP 설문조사는 무기명으로 진행됐고,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답안을 유도하거나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감시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더페어> 취재 결과 포스코 측의 해명은 드러난 사실과는 차이가 있었다. 제보자 문자 내용에 따르면 관리자급 인사가 '반원들이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도록 지도 바란다', 'C문항 9번째, F문항 1번째는 역질문이니 참고 부탁드리고, 그 외 나머지는 6번으로 전파 부탁드린다' 와 같이 특정 답안을 유도하는 문자를 발송했다.

뿐만 아니라 포스코 임직원이 이용하는 사내 커뮤니티에는 '누군지 알아내려고 혈안이다', '답은 정해져 있고 파트장 부공장장 앞에서 공개적으로 해야 했다', '눈 앞에서 100점 찍으라고 난리다' 등 설문조사 과정에 관리자가 개입해 자유로운 설문을 방해한 것을 성토하는 글이 여러 차례 올라왔다.
포스코의 직원 감시·통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7일 포스코 노동조합이 '노동쟁의대책위원회 출범식'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발송한 단체 메일이 직원들에게 수신되지 않았다. 노조 측은 원인 파악을 위해 사측에 이 상황에 대해 문의했고, 돌아온 답변은 놀라웠다. 포스코가 직원들이 해당 메일을 받을 수 없도록 고의로 노조 발송 메일을 차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회사 차원에서 노조 메일 계정을 차단한게 맞다"면서, "노조로부터 이와 같은 내용의 메일이 다시 발송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약속을 받고 다음날 차단을 해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내 메일 역시 업무를 위한 회사 자산이라 회사의 특정 인물에 대한 왜곡된 사실과 명예훼손 등의 회사 이익에 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이를 근거로 계정을 차단했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거나 해명을 듣는 과정은 없었다. 또 차단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절차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지 못했다. 결국 회사 입장과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언제든 직원들의 소통 창구를 일방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포스코 측이 노조 메일 계정 차단 근거로 주장한 '특정 인물에 대한 왜곡된 사실과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내용'은 지주회사인 포스코 홀딩스의 최정우 회장과 관련된 내용이다. 노조 측은 이번 임금 및 단체협약(이하 임단협) 내용에 직원들에게 자사 주식 지급을 포함했다. 노조가 전 직원에 자사주 지급을 요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포스코는 태풍 힌남노로 역대급 피해를 입었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 직원들은 주말과 명절 연휴도 반납하고 복구작업에 매달렸는데, 그 사이 최정우 회장과 김학동 부회장 등 일부 임원들이 스톡그랜트로 수억 원 상당의 자사주를 배당받았다. 회사는 위기인데 임원들은 직원 몰래 거액의 주식을 지급받았다는 것이다.

포스코 측은 여러 해 동안 논의 돼 왔던 내용이며 그간의 노력에 따른 보상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그 해 포스코는 역대급 태풍 피해로 영업이익이 반토막이 난 상황이었다. 이 일로 최 회장은 내외부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고, 3연임을 노리던 그의 경영 리더십에도 큰 상처를 받았다.
최근에는 노사 임단협 교섭마저 결렬되며 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까지 하는 등 포스코 창사 55년 만에 첫 파업 위기까지 맞고 있다. 이 상황이 결국 파업으로 이어질 경우 포스코가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때 협력사는 물론, 철강·건설 등 여러 분야에 미칠 큰 피해는 불가피하다.
포스코는 올 여름 직원들에게 '청바지 입고 출근하는 것'을 허용하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미 대부분의 기업들이 여러 해 전 복장자율화를 시작하고 여름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마당에 청바지를 가지고 홍보를 해 되려 포스코의 경직된 사내 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역효과를 맞기도 했다. 현재 포스코의 상황을 바라볼 때 직원에 대한 비상식적인 감시와 통제, 시대에 뒤떨어진 기업 문화가 과연 기업에 효율과 이익을 가져다 주고 있는지 열린 마음으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